기후위기 주범 CO2가 없어서 나라가 멈춘다? 영국 공급망 대란의 역설

대중에게 CO2(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의 주범임. '탄소 배출권'을 사서라도 줄여야 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음. 하지만 산업계의 현실은 정반대임.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그 CO2를 돈을 줘도 구하지 못해 나라의 핵심 인프라 전체가 멈출 판임.

2026년 6월 11일, 영국 비즈니스통상부(DBT)와 환경식품농무부(Defra)가 이례적인 국가 긴급 정책을 개시함. 식품과 의료용 CO2 공급망 복원력을 높이기 위한 '의견 수렴(Call for Evidence)'을 공식 시작한 것임. 공기 중에 널린 게 이산화탄소인데,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급망을 챙겨야 할 만큼 진짜 위기가 터졌다는 뜻임.

1. CO2가 도대체 어디에 쓰이길래 국가 인프라가 흔들린다고 난리인지 알아야 함.
2. 단순히 맥주나 콜라에 톡 쏘는 탄산을 넣는 수준이 아님.
3. CO2는 영국의 주요 국가 인프라(CNI)를 굴리는 핵심 혈액임.
4. 마트의 신선식품 포장에 CO2를 주입해 세균 증식을 막고 유통기한을 늘림.
5. 돼지나 닭을 인도적으로 도축할 때 고통 없이 기절시키는 용도로도 쓰임.
6. 의료계와 에너지 인프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짐.
7. 백신이나 장기 이식을 위한 드라이아이스를 만들고, 수술실과 MRI 스캔을 가동하는 데 필수적임.
8. 심지어 영국의 민간 원자력 발전소 냉각재로도 CO2가 들어감.
9. CO2 공급이 끊기면 식탁에서 삼겹살과 맥주가 사라지고, 병원 수술실과 원전이 마비되는 것임.
10. "그렇게 중요하면 공장을 지어서 많이 만들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음.
11. 여기서 치명적인 모순이 발생함. 산업용 CO2는 일부러 만드는 메인 제품이 아님.
12. 천연가스를 태워 암모니아나 비료를 만들 때, 혹은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할 때 나오는 '부산물(By-product)'임.
13. 주력 산업인 비료 공장이 돌아가야만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얄팍한 구조라는 뜻임.
14. 영국은 이 CO2 수요의 최소 20% 이상을 스칸디나비아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해왔음.
15. 평소에는 흔하고 싸게 구하던 것이, 위기 때는 귀해지고 비싸지는 전형적인 취약 고리임.
16. 이번 영국의 CO2 대란의 근본 원인을 찾으려면 중동 지정학을 봐야 함.
17.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차단되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됨.
18.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니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함.
19. 가스값이 오르자 가스를 주원료로 쓰는 유럽의 비료(암모니아) 공장들이 수지타산이 안 맞아 줄줄이 가동을 중단해버림.
20. 비료 공장이 멈추니, 거기서 포집하던 부산물인 CO2 공급도 연쇄적으로 끊겨버린 것임.
21. 중동에 떨어진 폭탄 하나가 유럽의 비료 공장을 멈추고, 영국의 식탁과 병원 수술실을 마비시키는 아찔한 '공급망 나비효과'가 터짐.
22. 영국은 과거 2018년과 2021년에도 가스값 폭등으로 비료 공장이 멈추며 CO2 대란을 겪은 뼈아픈 역사가 있음.
23. 특히 2021년에는 식품 업계가 CO2를 구하기 위해 평소보다 5배나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했음.
24. 하지만 이번 위기는 과거와 차원이 다름.
25. 영국의 비상대책위원회(Cobra)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6월까지 이어지는 합리적인 최악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함.
26. 'Exercise Turnstone'이라는 이 기밀 훈련의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음.
27. 최악의 경우 영국의 CO2 공급량이 현재 수준의 18%까지 폭락할 수 있다는 데이터가 나옴.
28. 국가 필수 인프라를 돌릴 CO2의 80% 이상이 날아간다는 소리임.
29. 발등에 불이 떨어진 피터 카일(Peter Kyle) 영국 비즈니스 장관은 긴급 처방을 내림.
30. 지난 3~4월, Teesside에 위치한 유휴 상태(mothballed)의 Ensus 바이오에탄올 공장을 3개월간 억지로 재가동시킴.
31. 이 죽어가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무려 1억 파운드(약 1,700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혈세로 수혈함.
32. 필요하다면 비상 입법을 통해 민간 공장들이 다른 제품 생산을 멈추고 CO2만 100% 생산하도록 강제하는 방안까지 고려됨.
33. 탄소 배출을 줄이자며 돈을 내고 버리던 CO2를, 1억 파운드나 주고 인공호흡기를 달아 살려내는 촌극이 벌어진 것임.
34. 하지만 1억 파운드짜리 땜질 처방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걸 영국 정부도 알고 있음.
35. 결국 6월 11일 시작된 정책(Call for Evidence)은 정부의 항복 선언이자, 근본적인 체질 개선 선언임.
36. 기존의 구조는 가스 기반의 비료 공장 부산물에 목을 매는 화석 연료 의존형이었음.
37. 이것을 양조장이나 혐기성 소화 플랜트에서 나오는 바이오제닉(Biogenic) CO2를 포집하고, 직접 공기 포집(DAC) 기술을 키우는 쪽으로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것임.
38. 해외 가스값에 휘둘리지 않는 저탄소/국내 자급형 공급망으로 구조적 전환을 이루겠다는 목표임.
39. 이번 사태는 에너지 안보가 곧 식량 안보이자 의료 안보임을 극명하게 보여줌.
40. 세상은 하나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 중동의 폭탄 하나가 내 손에 들린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빼앗아갈 수 있는 게 지금의 글로벌 공급망임.
41.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끊어질 때, 진짜 위기가 시작되는 것임.

한 줄 코멘트. 기후 위기의 주범인 CO2를 1,700억 원이나 주고 살려내야 하는 것이 글로벌 공급망의 역설임.

참고 자료.
- 영국 정부(GOV.UK) - Strengthening CO2 supply chain resilience: call for evidence - 원문 보기
- The Guardian - UK could face food shortages this summer under CO2 contingency plans - 원문 보기
- The Independent - What is Exercise Turnstone? The leaked plan amid threat of Iran war food shortages - 원문 보기
- The National - UK planning for food shortages as Iran war causes fall in carbon dioxide supplies - 원문 보기

확인할 변수.
- 중동 전쟁(이란 분쟁) 극적 타결 및 호르무즈 해협 조기 개방 여부
- 유럽 천연가스(TTF) 가격 추이 및 영국 테스코(Tesco) 등 대형 마트 육류/탄산음료 가격 인상률과 결품률
- 10주간의 'Call for Evidence' 종료 후 발표될 바이오제닉(Biogenic) CO2 포집 시설에 대한 영국 정부의 추가 보조금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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